개러지 취향
2026-03-19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의 요청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작업,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예상 외로 재밌었다. 그런 김에 취향에 대한 몇 가지 주제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취향의 형성
친구는 내가 취향이 확실하고 멋지다고 생각해서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한다. 내 인생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뿐인데, 이건 내가 노력한 부분이 아니라서 어떻게 이런 취향을 가졌는지에 대해선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도 생각해보자면: 예를 들면, 심즈4 에서는 심의 선호도에 대해서 긍정과 부정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음악으로 가정한다면, 팝을 좋아하는지 혹은 전자 음악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선택 이벤트를 맞닥뜨리기 위해선 관련 행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전자 음악을 n분 정도 듣고 나면 그때 선택 이벤트가 나온다. 우리의 취향도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경험하지도 못한 것에 대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러나 최근에는 어떤 행동에 대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매체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마인크래프트를 하면서 슬라임이 싫다든지 엔더 드래곤이 멋있다든지에 대한 감상을 늘어 놓을 수 있다. 물론 이와 직접 경험의 차이로 인해 안좋은 영향도 있지만 차치하고.
아무튼 세상을 느끼는 만큼 취향이 생긴다고 본다.
최근 읽은 트윗에 대한 감상
얼마 전에 사람을 좋아하지만 아무런 기대가 없다란 트윗을 읽었는데, 생각해보니 내 이야긴 것 같기도 해서 공감이 갔다. 나는 내게 박애주의 면모가 있다고 보는 편이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고, 행운을 빌어주고 싶고 그렇다. 가끔 사람들이 내가 너무 응원/부추겨서 스불재가 늘어났다고 불평하긴 하던데, 난 모르는 일. 또 인상 깊었던 트윗으론 왜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 하냐는 내용이었다. 난 못해줄 것도 없지 않냔 생각이다. 말 한마디로 기분이 나아진다면야 마치 들꽃 한 송이를 줬는데 호감도가 세 칸 오른 느낌이지 않나. 물론 나도 적재적소에 맞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문제는 의지는 있는데 능력이 부족하다. 이건 연습이 필요한 영역 같다. 눈치가 부족해…
그런데 말 한마디가 힘이 된다는 건 맞는 말 같다. 지인이 Val 님은 다 잘될 것 같은데요? 라고 해준 말이 많은 정신 붕괴 이벤트를 막아줬다. 이런 경험들이 있다 보니 나도 좋은 말 봇이 되고 싶은데 현실은 장난만 치는 것 같긴 하다. 반성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자 하는 욕구 (소프트웨어)
난 잘못된 무언가를 고치기 위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욕구가 크지 않은 편이다. 누구는 이게 희귀한 성향이라곤 하더라. 그냥 귀찮은건지 회피하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재작성 자체를 싫어하는건 아니고, 최후의 보루 정도로 여기는 셈이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 의심 성향의 영향인데, 단순히 내가 다시 만든다고 괜찮아질지 확신이 없어서 그렇다. ‘자만하지 말자’가 초등학교 때 좌우명이었으니, 알만하다. 근거가 합리적이라면 재작성이든 재사용이든 다 찬성이다. 다만, 근거 없는 자기 확신 혹은 기타 감정적인 이유에서 비롯되는 재작성을 비롯한 기타 행위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일이라면… 특히 회사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라면, 퇴사하면 그만이라는 그런 태도는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